[연작 칼럼] 안전성 평가의 방관자들: 원료 공급자의 독백 ② 2편: ‘심판’ 없는 경기장, "대체 누가 이 안전성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
② 2편: ‘심판’ 없는 경기장, "대체 누가 이 안전성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

안전성 평가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원료사가 뼈를 깎아 제출한 그 전문적인 독성 데이터들을, 대체 ‘누가’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유럽의 시스템을 차용한 이번 제도는 ‘자격 요건을 갖춘 안전성 평가사’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에 묻고 싶다. 우리에게 화학 물질의 장기적 축적 독성, 경피 흡수율, 유전 독성까지 완벽하게 스크리닝하고 과학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 ‘독성학자(Toxicologist)’ 자격의 평가사가 과연 몇 명이나 존재하는가?
현재 시장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의학, 약학, 화학 등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몇 년의 경력만 있으면 서류상 평가사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논의가 오간다. 이는 결국 ‘진짜 독성학 전문가’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직원이 몇 시간짜리 교육을 이수하거나 사설 컨설팅 업체에 수백만 원의 비용을 주고 서류를 ‘구매’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원료 공급자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바로 이 ‘전문성 없는 심판’들의 권력화다. 독성학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브랜드사의 비전문가 평가사들이, 규제 기관의 검열이 두려워 원료 공급사에게 "더 가혹한 데이터", "더 과도한 안전성 증명"을 초법적으로 요구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원료사가 수많은 불순물 시험 성적서를 제출해도, 평가사가 이를 해석할 능력이 없으면 그 원료는 무조건 '부적합' 처리되거나 기피 원료가 된다. 결국,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도 도입은, K-뷰티 특유의 역동적인 신원료(K-소재) 개발 의지를 꺾어버리는 강력한 '규제 철창'이 될 것이다.
'누가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프라와 국가 차원의 전문 독성 전문 인력 양성 없이 추진되는 안전성 평가는, 알맹이 없는 '서류 복사 전쟁'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판매업자 중심의 보여주기식 의무 교육이 아니다. 공급망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판'을 먼저 키워내는 일이다. 심판도 없는 경기장에 선수들만 몰아넣고 "글로벌 스탠다드"라 외치는 것은 기만이다.
정부는 제도 안착을 위해 전문의나 특정 면허 소지자를 평가사 자격의 핵심으로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피부과 전문의가 이 제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업계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 임상'과 '독성학적 안전성 평가'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치명적인 착각이다.
임상과 독성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피부과 전문의는 화장품을 피부에 발랐을 때 나타나는 현상학적 결과, 즉 알레르기 반응이나 유효성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임상의(Clinical Doctor)다. 반면, 안전성 평가는 원료 자체의 화학적 구조, 장기 축적에 따른 유전 독성, 흡수율에 따른 전신 노출량(SED)과 안전역(MoS) 등을 복합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독성학(Toxicology)’의 영역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능력과 세포 수준의 독성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은 엄연히 별개의 전문성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화장품 시장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과 리뉴얼 제품은 수만 개에 달한다. 이 방대한 양의 안전성 평가 자료를 단 소수의 피부과 전문의들이 검토하고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불가능할뿐더러, 전문의들에게 독성학적 리스크의 독박 책임까지 지우겠다는 무책임한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결국 지금의 정책 방향은 알맹이 없는 ‘서류 복사 전쟁’과 ‘형식적인 자격증 남발’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진정으로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다면, 보여주기식 교육이나 엉뚱한 직군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화장품 원료의 화학적·독성학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스크리닝할 수 있는 '진짜 독성 전문 인력'을 국가 차원에서 양성하고 이들의 객관적인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만약 이러한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 없이 지금처럼 서류 복사와 전달 책임을 전가하는 ‘행정 편의주의적 가짜 안전성 평가’에만 머무른다면, K-뷰티는 머지않아 거대한 글로벌 규제의 벽 앞에서 침몰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화장품 규제 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의 MoCRA(화장품 규제 현대화법)는 FDA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며 성분 안전성 입증을 실질적인 법적 의무로 강제하기 시작했고, 유럽연합(EU)은 SCCS(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를 통해 나노물질, 내분비계 교란 물질 등 미세 성분의 독성학적 데이터를 현미경 수준으로 들이대며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안전하다고 보증합니다’라는 서명이나, 알맹이 없이 복사된 성적서 몇 장이 아니다. 원료의 추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량의 불순물(Impurity) 리스크부터, 장기 사용 시 체내에 미치는 독성학적 인과관계를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정량적 데이터’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국내 브랜드사가 원료사에 서류를 읍소하고, 원료사는 규정집을 짜깁기해 형식적인 PIF(원료안전성자료)를 찍어내는 ‘서류 복사 전쟁’ 수준으로는 이 철저한 과학적 검증망을 결코 뚫을 수 없다. 글로벌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서류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과학적 신뢰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알맹이 없는 행정 놀음은 K-뷰티의 글로벌 시장 진출길을 스스로 가로막는 자해 행위가 될 뿐이다. 이제라도 서류의 양을 늘리는 규제가 아닌, 데이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국가적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것만이 고도화되는 글로벌 안전성 규제 시장에서 K-뷰티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