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골이 수술 생존기 : #1. 닫힌 문 뒤의 천둥

매트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건강 그 자체였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유도 판에서 땀을 흘리던 엘리트 체육 유망주. 타고난 통뼈와 밭다리를 걸 때 묵직하게 버텨주던 근육들은 내 몸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매트를 떠나고 운동을 그만두면서 내 몸은 통제를 잃었다. 거대했던 근육의 자리 위로 차근차근 살이 차올랐고, 정신을 차렸을 땐 저울의 바늘이 118kg을 가리키고 있었다. 118kg. 유도 유망주였던 소년은 어느새 육중한 거구가 되어 있었다.
혼자 살던 시절에는 그 무게의 무서움을 몰랐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술자리가 끝난 뒤 방을 같이 쓸 때면 "너 코 진짜 심하게 골더라"라는 핀잔을 듣긴 했다. 하지만 그저 '덩치가 커서',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 몸이 밤마다 좁아진 기도 사이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나 홀로 쓰는 방 안에서는 알아채지 못했다.
내 코골이가 단순한 잠버릇이 아닌 '재앙'이라는 걸 깨달은 건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달콤한 신혼. 하지만 불이 꺼지면 내 방은 미안함과 스트레스의 전장으로 변했다. 118kg의 거구가 뿜어내는 코골이는 아내의 수면을 여지없이 파괴했다. 옆에서 천둥이 치는데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밤마다 미안함에 눈치를 보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 그리고 수면 부족으로 지쳐가는 아내. 침실은 더 이상 휴식의 공간이 아니었다.
얼마 후, 우리에게 축복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축복은 우리 부부에게 합법적인 이별(?)의 명분을 주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수면을 위해, 그리고 육아에 지친 아내의 깊은 잠을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기로 했다.
문을 닫고 나만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평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미안해하며 뒤척이지 않아도 됐고, 밤새 천둥을 쳐대도 눈치 주는 이가 없었다. 각방 생활은 우리 부부에게 즉각적인 휴식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내 건강의 적신호를 완벽하게 가려버린 달콤한 마취제였다. 방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내 코골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자각할 기회조차 완전히 갇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닫힌 문 뒤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내에게는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좁아진 목구멍 속 기도는 여전히 매일 밤 SOS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118kg의 몸, 닫힌 문, 그리고 서서히 망가지고 있던 수면. 이제 나는 이 닫힌 문을 열고, 내 몸이 보내는 구조 신호에 응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