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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골이 수술 생존 #2. 마흔여섯, 소장이 되던 해의 이상징후

닫힌 문 뒤에서 보낸 달콤한 평화는 영원할 줄 알았다. 연구원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어느덧 마흔여섯. 마침내 연구소 소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왕관을 쓴 자의 무게만큼 일은 말도 못 하게 많아졌고, 책임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주로 책상에 앉아 도면과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연구직 특성상 활동량은 극도로 적었고, 출장과 미팅으로 운전대를 잡을 일은 넘쳐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쏟아지는 졸음과 지독한 피로가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나이도 어느덧 마흔여섯이고, 하루 종일 앉아서 머리를 쓰고 운전을 하니 피곤한 게 당연하다고, 소장이 되어 업무 과부하가 걸렸으니 체력이 떨어진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하지만 그 피로는 무언가 이상했다. 단순히 '피곤하다..

코골이 수술 생존기 : #1. 닫힌 문 뒤의 천둥

매트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건강 그 자체였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유도 판에서 땀을 흘리던 엘리트 체육 유망주. 타고난 통뼈와 밭다리를 걸 때 묵직하게 버텨주던 근육들은 내 몸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매트를 떠나고 운동을 그만두면서 내 몸은 통제를 잃었다. 거대했던 근육의 자리 위로 차근차근 살이 차올랐고, 정신을 차렸을 땐 저울의 바늘이 118kg을 가리키고 있었다. 118kg. 유도 유망주였던 소년은 어느새 육중한 거구가 되어 있었다. 혼자 살던 시절에는 그 무게의 무서움을 몰랐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술자리가 끝난 뒤 방을 같이 쓸 때면 "너 코 진짜 심하게 골더라"라는 핀잔을 듣긴 했다. 하지만 그저 '덩치가 커서',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 몸..

화장품의 '본질'을 혁신하는 시간: 인-코스메틱스 코리아 2026을 돌아보며

화장품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화려한 브랜드 로고와 세련된 용기 디자인, 그리고 '피부 장벽 개선'과 같은 매력적인 마케팅 문구이다. 그러나 화장품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제형을 형성하고 실질적인 효능을 구현하는 '원료'에 존재한다.지난 7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코엑스(COEX)에서 개최된 ‘인-코스메틱스 코리아 2026(in-cosmetics Korea 2026)’은 화장품의 근간을 이루는 글로벌 원료사와 연구원들이 총출동한 국내 유일의 퍼스널 케어 원료 전문 B2B 전시회였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이번 박람회는 K-뷰티의 위상이 세계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현시점에서, 향후 화장품 산업이 나아갈 진화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필자도 박람회를 2일이나 참석하여 관람하였다.(..

[칼럼] 화장품을 만들 때, 제일 비싼 것은 무엇일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화장품, ‘용기(Container)’라는 화려한 외피에 가려진 본질에 대하여화장품 연구원으로서 포뮬러를 설계하고, 수많은 원료의 시너지를 고민하다 보면 문득 깊은 회의감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치열한 밤샘 연구 끝에 피부 장벽을 복구하고 최적의 흡수력을 구현하는 액정(Liquid Crystal) 유화 제형을 완성해 내도, 결국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최종 단계에서는 내용물보다 이를 감싸는 ‘껍데기’에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현실을 마주할 때다.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우리가 시중에서 구매하는 화장품 원가 구조를 뜯어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고가의 기능성 크림이나 세럼일수록 그렇다. 포뮬러의 가치를 압도하는 부자재의 비용일반적으로 대중적인 화..

[칼럼] WGSN의 선택한 2028년 뷰티 성분 트렌드: '과학적 확신'과 '생명 공학'이 이끄는 화장품의 미래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는 늘 변화무쌍하지만, 그 밑바닥을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는 결국 '소비자의 결핍'과 이를 해결하려는 '기술의 진화'가 맞물리며 형성된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 예측 기관 WGSN이 제시한 ‘2028년 뷰티 성분 트렌드(Future of Ingredients 2028)’는 향후 몇 년간 화장품 연구원과 마케터들이 어떤 나침반을 쥐고 움직여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8년 뷰티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신뢰(Trust)’와 ‘롱제비티(Longevity)’다. 모호한 마케팅적 수사나 스토리에 의존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후 변동성이 심화되고 AI가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소비자들은 내 피부에 닿는 원료가 ‘얼마나 확실한 임상 데이터’를 가졌는지, ‘얼마나 지속 가능한 ..

[칼럼] 혁신과 규제 사이, 화장품 성분사전이라는 무거운 '안전장치'

[HOW-TO] 혁신의 첫 단추: 성분사전 검색과 '데이터' 해석법내가 상상한 제형을 현실로 만들기 전, 연구원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은 바로 성분사전 검색이다.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면 대한화장품협회의 '대한민국 화장품 성분사전'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면 미국 화장품협회(PCPC)의 'wINCI(International Cosmetic Ingredient Dictionary)' 혹은 유럽의 'CosIng'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야 한다.방법은 의외로 직관적이지만, 그 안의 데이터를 명확히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① 성분사전 검색의 기술대한민국 화장품 성분사전: 국문 성분명, 영문명, CAS No.(화학물질 고유번호), 또는 상표명(상품명)으로 검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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