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부서질 것 같던 어느 날, 지독한 감기까지 겹쳐 찾아왔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약국 감기약으로 버텼겠지만, 그날은 유독 증상이 심했다. 주변에서 "감기가 되게 독할 때는 내과 말고 이비인후과로 가보는 게 효과가 빨라"라고 조언해 주기에, 별생각 없이 회사 근처의 작은 이비인후과 문을 열었다. 그것이 내 삶의 궤도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진료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의사 선생님이 콧속을 관찰하고 찍는 카메라로 내 콧구멍을 벌리고 불빛을 비추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벼운 처방전이나 받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화면을 보던 의사 선생님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모니터를 요리조리 살피던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환자분, 왼쪽 코 안쪽에 꽤 큰 혹 같은 게 보이네요."
혹이라니?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살면서 크게 아파본 적 없고, 중학교 때까지 유도 매트 위를 굴러다니던 내가 '혹'이라는 단어를 마주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불길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겁먹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의사 선생님은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당장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주 위험하거나 악성인 그런 느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크기가 꽤 커서 숨길을 많이 막고 있네요. ...혹시 평소에 코 되게 많이 골지 않으세요?"
그 한마디가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그동안 맞춰지지 않던 퍼즐 조각들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결혼 초기 아내를 밤새 잠들지 못하게 했던 그 천둥소리, 출산 이후 미안함에 도망치듯 문을 닫아걸었던 각방 생활, 그리고 마흔여섯에 소장이 된 이후 자도 자도 풀리지 않던 기괴한 피로와 10kg을 빼도 끄떡없던 대사의 정체기까지.
모든 범인은 내 의지박약이나 단순한 노화가 아니었다. 내 왼쪽 콧구멍 깊은 곳, 숨길을 꽉 막고 서 있던 그 정체 모를 혹 덩어리였다.
"일단 감기약은 처방해 드릴 테니까, 감기 나으면 시간 내서 큰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묘하게 무거우면서도 달랐다. 손에 쥔 감기약 봉투보다 머릿속을 채운 건 '코골이'라는 세 글자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나는 홀린 듯 스마트폰을 켜고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그리고 코 안의 혹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닫아두었던 나만의 '침묵의 방', 그 방 문을 열고 마침내 내 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코골이가 심한 중년의 수술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코골이 수술 생존기 #2. 마흔여섯, 소장이 되던 해의 이상징후 (0) | 2026.07.06 |
|---|---|
| 코골이 수술 생존기 : #1. 닫힌 문 뒤의 천둥 (0) | 2026.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