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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골이수술 6

코골이 수술 생존기 #6. 호텔 같은 밤, 그리고 몇 년 만의 숙면

시간은 흘러 드디어 다음 주 주말이 되었다. 코골이 수술 여정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자, 내가 잠든 사이 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데이터로 증명해 줄 '수면다원검사'를 받는 날이었다.사실 출발 전부터 주차비 걱정이 앞섰다. 주차비가 살벌하기로 악명 높은 송도 국제도시가 아닌가. 게다가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주차를 해야 하니 비용이 꽤 나오겠다 싶었는데, 병원 측에서 검사가 끝나고 나갈 때까지 주차비를 전액 무료로 지원해 준다고 했다. 지갑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채 운전대를 잡았다.검사는 낮에 진료를 보던 본관 맞은편에 위치한 별도의 전용 검사실에서 진행되었다. 밤 9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낮 동안 카카오톡을 통해 '커피 마시지 않기', '낮잠 자지 않기' 등 검사 당일 주의해야..

코골이 수술 생존기 #5. 무장해제, 그리고 첫 번째 목소리

친적 누나의 추천을 받고 주말 예약을 위해 송도 '김영효 이비인후과'를 검색해 보았다. 후기들을 읽어 내려가다 유독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비뚤배뚤한 글씨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 후기였다.'아, 아이들도 수면무호흡 때문에 수술을 하는구나…….'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수술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린아이들도 이 병원을 믿고 수술을 받아 숨길을 찾았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감사 편지를 보니 병원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마흔여섯이 되도록 내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않고, 미련하게 병원을 멀리해 왔던 내 자신이 참 멍청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병원에 대한 이유 없는 거부감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

코골이 수술 생존기 #4. 성게와 차가운 병원, 그리고 새로운 이정표

이비인후과를 다녀온 뒤로,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쥐고 코골이 수술 후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직책 특성상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기에, 수술 후 회복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세밀한 정보가 절실했다.화면 너머로 마주한 환자들의 후기는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실소극처럼 흥미로웠다. 그중 가장 뇌리에 박힌 강렬한 후기가 하나 있었다."수술하면 정말 신세계가 열립니다. 좋습니다. 좋은데…… 회복하는 동안은 매일매일 성게를 생으로 한 입에 꿀꺽 삼키는 기분이 듭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 전체를 가시로 찌르는 것 같습니다." 성게를 통째로 삼키는 기분이라니. 활자로만 봐도 목구멍이 찌릿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현이었다. 유도 선수 시절 웬만한 고통은 다 견뎌봤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그 생..

코골이 수술 생존기 #3. 콧속에 도사린 뜻밖의 침입자

몸이 부서질 것 같던 어느 날, 지독한 감기까지 겹쳐 찾아왔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약국 감기약으로 버텼겠지만, 그날은 유독 증상이 심했다. 주변에서 "감기가 되게 독할 때는 내과 말고 이비인후과로 가보는 게 효과가 빨라"라고 조언해 주기에, 별생각 없이 회사 근처의 작은 이비인후과 문을 열었다. 그것이 내 삶의 궤도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진료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의사 선생님이 콧속을 관찰하고 찍는 카메라로 내 콧구멍을 벌리고 불빛을 비추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벼운 처방전이나 받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화면을 보던 의사 선생님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모니터를 요리조리 살피던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환자분, 왼쪽 코 안쪽에 꽤 큰 혹 같은 게 보이..

코골이 수술 생존기 #2. 마흔여섯, 소장이 되던 해의 이상징후

닫힌 문 뒤에서 보낸 달콤한 평화는 영원할 줄 알았다. 연구원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어느덧 마흔여섯. 마침내 연구소 소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왕관을 쓴 자의 무게만큼 일은 말도 못 하게 많아졌고, 책임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주로 책상에 앉아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연구직 특성상 활동량은 극도로 적었고, 출장과 미팅으로 운전대를 잡을 일은 넘쳐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쏟아지는 졸음과 지독한 피로가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나이도 어느덧 마흔여섯이고, 하루 종일 앉아서 머리를 쓰고 운전을 하니 피곤한 게 당연하다고, 소장이 되어 업무 과부하가 걸렸으니 체력이 떨어진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하지만 그 피로는 무언가 이상했다. 단순히 '피곤하다'는 말..

코골이 수술 생존기 : #1. 닫힌 문 뒤의 천둥

매트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건강 그 자체였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유도 판에서 땀을 흘리던 엘리트 체육 유망주. 타고난 통뼈와 밭다리를 걸 때 묵직하게 버텨주던 근육들은 내 몸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매트를 떠나고 운동을 그만두면서 내 몸은 통제를 잃었다. 거대했던 근육의 자리 위로 차근차근 살이 차올랐고, 정신을 차렸을 땐 저울의 바늘이 118kg을 가리키고 있었다. 118kg. 유도 유망주였던 소년은 어느새 육중한 거구가 되어 있었다. 혼자 살던 시절에는 그 무게의 무서움을 몰랐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술자리가 끝난 뒤 방을 같이 쓸 때면 "너 코 진짜 심하게 골더라"라는 핀잔을 듣긴 했다. 하지만 그저 '덩치가 커서',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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